다시 다니는 성균관대학교와 김귀정 열사

#성균관대를 다시 다니는 요즘 감회가 새롭다. 모든 것에. 삼성이 인수할 때 대학생이 됐고, 덕분에 공사장을 돌아다녔고, 지금은 삼성이 만든 공간을 누리고 있다. 보상 심리? 그 시절에는 금잔디 광장이 지금보다 두 배 크고(경영관이 없어서) 도서관으로 가면서 학생회관이 있었다. 종합강의동(지금의 퇴계인문관)이나 수선관에서 수업을 듣고 생과대학(호암관)에 샹들리에(우리는 선데리아라고 불렀다)에서 밥을 먹은 뒤 역 교실이나 C룸 동아리실에 가려면 반드시 #김귀정 열사의 분향소를 거쳐야 했다. 흑백사진의 예쁜 선배의 학모양을 기리는 작은 공간에는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향불이 켜졌다. 물론 나는 그 의미도 이유도 모르는 한심한 게으름뱅이였다. 오늘 #성공회대 수업을 마친 뒤 차를 몰고 #600주년기념관 지하의 죽이는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했다. 과거 이 건물은 훌륭한 석조 건물이었다. 학생운동의 성지 민족성대의 상징적 공간이지만 삼성은 들어오자마자 이 건물을 부쉈다. 식사를 하고 과거 중앙도서관 쪽 계단을 오르면 김귀정 열사 추모비가 보인다. 이 조형물은 언제부터 있었을까.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? #역사가들이란 원래 쓸모없는 존재들이다. 그래도 이것은 나의 운명인 것이다. 적절한 때에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때 그 청춘들의 열정과 절망을 분노와 가치를 기록하고 기억한다. 그게 우리 세대의 수치라고 생각해. 그들은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다! 괜히 입술을 깨물어 보다. #성균관대를 다시 다니는 요즘 감회가 새롭다. 모든 것에. 삼성이 인수할 때 대학생이 됐고, 덕분에 공사장을 돌아다녔고, 지금은 삼성이 만든 공간을 누리고 있다. 보상 심리? 그 시절에는 금잔디 광장이 지금보다 두 배 크고(경영관이 없어서) 도서관으로 가면서 학생회관이 있었다. 종합강의동(지금의 퇴계인문관)이나 수선관에서 수업을 듣고 생과대학(호암관)에 샹들리에(우리는 선데리아라고 불렀다)에서 밥을 먹은 뒤 역 교실이나 C룸 동아리실에 가려면 반드시 #김귀정 열사의 분향소를 거쳐야 했다. 흑백사진의 예쁜 선배의 학모양을 기리는 작은 공간에는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향불이 켜졌다. 물론 나는 그 의미도 이유도 모르는 한심한 게으름뱅이였다. 오늘 #성공회대 수업을 마친 뒤 차를 몰고 #600주년기념관 지하의 죽이는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했다. 과거 이 건물은 훌륭한 석조 건물이었다. 학생운동의 성지 민족성대의 상징적 공간이지만 삼성은 들어오자마자 이 건물을 부쉈다. 식사를 하고 과거 중앙도서관 쪽 계단을 오르면 김귀정 열사 추모비가 보인다. 이 조형물은 언제부터 있었을까.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? #역사가들이란 원래 쓸모없는 존재들이다. 그래도 이것은 나의 운명인 것이다. 적절한 때에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때 그 청춘들의 열정과 절망을 분노와 가치를 기록하고 기억한다. 그게 우리 세대의 수치라고 생각해. 그들은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다! 괜히 입술을 깨물어 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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